[뉴스의 맥] "日 수출규제는 안보 핑계 댄 경제보복" 국제여론 환기해야

입력 2019-07-23 17:58   수정 2019-08-06 11:22

'日 수출규제' WTO 제소로 가면

'허가 등 통한 수출규제 금지' GATT 규정 위배 가능
'최혜국 의무'도 위반…'품목별 차별' 입증해야
日 '안보 예외' 주장…사실근거 없어 한국 유리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한국으로 수출하는 자국산 일부 품목의 수출규제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4일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3개의 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가 기존 포괄허가제에서 개별수출허가 대상으로 변경됐다. 한국은 이르면 다음달 ‘화이트(백색) 국가(안보상 우호국가)’ 목록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으로 수출되는 다수 품목이 일본 전략물자 수출통제체제의 상황허가(catchall) 통제를 받게 된다. 대량살상무기(WMD)의 개발·제조와 재래식 무기로서 최종 사용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한 품목을 제외한 모든 품목이 캐치올 통제 적용 대상이다.

한국은 화학약품, 전자부품, 공작기계, 차량용 전지, 탄소섬유, 통신기기 등 다양한 일본산 물품의 수입이 어려워지게 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번 조치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기업에 대한 압류재산 매각이 이뤄지면 추가 보복을 하겠다고 일본 정부가 분명히 밝힌 가운데, 한국 정부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자세다. 다만 외교적 해결을 우선한다는 방침이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관련해서는 “전략적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WTO를 통한 분쟁 해결에는 보통 2~3년이 걸린다. 승소하더라도 배상 책임을 일본에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제법적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WTO 제소는 일본의 이번 조치를 정치적 목적의 ‘경제 보복’이라고 규정한 한국 정부 입장에 대한 정당성을 다자적으로 확보하는 데 유의미하게 기여할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포기해서는 안 될 선택지 중 하나다. 23일~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가 정식 의제로 논의됐는데, 한국은 WTO 정식 제소를 위한 지지와 명분 확보에 주력했다.


무역규칙 '일관적이고 공평해야'

WTO 분쟁해결 절차에 들어간다면 한·일 양국은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전망이다. 우선, 일본 정부의 이번 수출규제는 ‘향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조 제1항에 위배될 수 있다. 이 조항은 WTO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제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개별수출허가제와 상황허가가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제한하는 것은 아니므로, 현재 ‘법률상의(de jure)’ 수량 제한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향후 제도 운용 과정에서 부당한 지연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해당 물품의 수출량이 감소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사실상의(de facto)’ 수량 제한으로 제11조 제1항 위반이 발생할 수 있다.

GATT 제1조 제1항 ‘최혜국대우 의무’에 위배될 가능성도 있다. 수출과 관련한 규칙·절차에 관해 일본은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자국산 상품에 부여한 대우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WTO 회원국으로 수출하는 동종 상품에 똑같이 주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국에 특혜를 줬다가 보통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이므로 최혜국대우 의무 위반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달리 예외를 인정받지 않는 한 특혜를 취소하는 조치에도 최혜국대우 의무가 적용된다. 다만 비교 대상이 되는 동종 상품군을 확정하고, 해당 상품군을 한국 및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데 차별이 발생했다는 점을 품목별로 보여줘야 할 입증 책임은 제소국인 한국에 있다.

'對北제재 위반 검증' 日 거부

일본 정부의 이번 수출규제는 향후 GATT 제10조 제3항(a)호에 반할 가능성도 있다. WTO 회원국은 수출과 관련한 무역규칙을 ‘일관적이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시’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행정이 특정 국가로 수출하는 데만 과도한 절차를 요구하거나 부당하게 지연시킬 경우 제10조 제3항을 위반할 수 있다.

일본은 이번 수출규제에 위에서 살펴본 WTO 협정 위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GATT 제20조 제(d)항이나 제21조를 예외사유로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제20조 제(d)항은 GATT에 합치하는 국내 법령의 준수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일본 정부가 자국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한국에 대한 수출통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조치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라는 점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제21조 제(b)항은 자국의 필수적 안보이익 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연관돼 있는 수출통제 건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재차 요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통상 분쟁을 두고 내려진 WTO 패널 판정에 비춰볼 때, 일본이 자의적 남용 없이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in good faith) 행동했는지,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진정 국가안보 목적으로 이뤄진 것인지가 제21조에서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대북(對北)제재 위반 여부를 다자적으로 검증받자는 한국 측 제안을 일본 정부가 사실상 거부했다는 점, 국제수출통제체제 하에서 한국은 수출통제 모범국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점, 전략물자 적발 건수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점도 일본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다음달부터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및 제조 또는 재래식 무기로서 최종 사용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한 품목을 제외한 다수 수출품목이 일본의 캐치올 통제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듯 여타 비(非)화이트 국가들과 동일한 수준의 허가 절차를 밟게 될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 대한 수출에만 ‘유독’ 엄격한 수출허가 심사가 이뤄질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日 상품 제한 '상응조치' 실익 크지 않아

일본의 수출허가제도가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따라 한국 정부의 법적 대응방안도 달라져야 한다. 다만, WTO 제소는 이번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수단이지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보다 즉각적인’ 효력을 갖는 상응조치로 일본산 상품·서비스의 시장접근 제한, 관세 인상, 대일 수출제한 조치 등은 실익이 크지 않다.

외교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양국 간 정치적·외교적 마찰을 이유로 불거졌다는 점을 다른 국가들에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이번 수출규제 조치가 글로벌 가치사슬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적극 피력해야 할 것이다. 전방위적이며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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